박상우 고간

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new

레무리안2024-05-19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시기를 맞춰 나타난 한 분 한 분의 작가들, 의도가 막힘없이 펼쳐지게 한 에너지 흐름, 이제 소임을 다하고 몸살을 앓으며 휴식하는 마무리까지. 내가 하는 일을 내가 하는 일이란 생각을 갖지 않고 가는 동안 의식한 것들과 의식하는 것들이 모여 시간성과 물질성의 창조를 목격하고 때마다 사랑과 창조, 헌신과 봉사를 되새깁니다. 감사합니다._()_ https://www.youtube.com/watch?v=HsBYXFV_rYU

기생특별시 종로구 우동 우세 1-1

레무리안2024-05-16

강의실 가는 길목에 <기생>이라는 묘한 식당이 생겼습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일본식 우동집 같지만 그 이외 어떤 음식을 파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술을 파는 기생집은 아니라는 것.ㅎㅎ 여기저기 한지에 써붙인 붓글씨체가 보통 잘 쓰는 정도를 넘어 저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붓글씨를 눈여겨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3주 전 토요일, 강의실로 가는 길이었는데 제가 딱 <기생> 앞을 지나칠 때 두 명의 중년 여성이 밖으로 나와 잠시 동안 저와 같은 지점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녀들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습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레무리안2024-05-13

사월과 오월, 꽃다발을 몇 차례 선물로 받게 되어 집안에 화병이 네 개로 늘어났습니다. 예전에는 꽃다발을 받으면 이걸 어쩌나,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는 과정이 지레 걱정스러웠는데 요즘은 그런 꽃다발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여 술을 마신 상태에서도 고이고이 집으로 모셔가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집에 도착하면 늦은 밤일지라도 꽃다발을 해체하고 한 줄기 한 줄기 다시 재배열하여 유리병이나 텀블러를 찾아 꽂아줍니다. 사실 제가 사는 집에는 공식적인 꽃병이 하나도 없는데 그것은 모든 생화가 며칠이 지나면 어쩔 수...

Since 1985 레트로 카페 을지다방

레무리안2024-04-26

목요일 오후 1시, 을지로3가 전철역 10번 출구. 인생 도반으로 지내는 시인 형과 점심약속이 있어 당도했는데 출구로 올라가보니 주변 풍경이 1970년대와 흡사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출구 옆에 다방 간판까지 나붙어 있었는데, 점심식사를 마친 뒤 시인 형이 저 다방에 올라가 차 한잔 하자고 권해서 재미삼아 가보자며 올라간 곳이 2층의 을지다방이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다방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에 BTS 사진이 어른거려 두리번두리번. 그제야 시인 형은 "이곳이 BTS 성지...

April come she will

레무리안2024-04-18

벚꽃이 지기 무섭게 철쭉과 연산홍이 지천에 흐드러져 집중적인 작업을 위해 커피숍을 오가는 동안 아주 여러 번 걸음을 멈추고 꽃들과 교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늘 같은 꽃이 피는 듯하지만 개화의 양상은 해마다 다른데 금년의 봄꽃들은 예년에 비해 유난스레 색이 짙고 함성과 같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게 느껴져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아파트 단지와 커피숍으로 가는 인도 양옆으로 흐드러진 봄꽃 속에서 이십 대에 나를 사로잡았던 아련한 이미지가 살아나 걸음이 느려졌는데 다행스럽게도 곡명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참으로...

벚꽃 클라쓰

레무리안2024-04-12

아파트 단지 주변에 벚꽃 길이 다섯 군데나 있어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주변이 놀라울 정도로 환해지고 며칠 지나면 꽃가루가 눈가루처럼 날려 도로를 뒤덮어버립니다. 지난주부터 작업할 것들이 많아져 벚꽃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다가 오늘 해질 무렵, 대부분의 작업을 종료하고 밖으로 나섰는데 산책길에서 차이 나는 벚꽃 클라쓰를 만나 우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고목에 가까운 벚나무 수피에서 저렇게 초롱초롱한 녀석들이 피어나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들게 만들었습니다. 벚꽃 엔딩이 시작되기 전, 석양을 등지고 선 내 그...

봄을 기다리는 자세

레무리안2024-03-24

토요일 밤, 늦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인도를 걷다가 문득 허공을 올려다보았을 때 헐벗은 형상으로 춤을 추는 듯한 플라타너스를 보았습니다. 긴 겨울, 가지치기당한 채 죽음 같은 침묵의 시간을 견디고 이윽고 봄기운이 완연해지자 생기가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여느 해와 또다른 한살이를 위해 나이테에 기록되는 또다른 살이의 경험을 위해 높은 곳에서 나무는 은밀한 설렘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우주적인 에너지는 언제나 생명에 기여하고 있음을 한 그루의 겨울나무를 ...

책사냥 후감

레무리안2024-03-01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긴 책이 많아져 교보문고에 책사냥을 갔습니다. 목록에 적힌 23권의 책 위치를 검색대에서 찾아 일일이 메모하고 한 권 한 권 찾아다니며 내용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교보문고인데 근래 나온 책들 중 5권이 <재고 없음>이었고 나머지 18권 중 대부분은 구매 후보에서 탈락해 최종적으로 구매한 책은 단 두 권이었습니다. 과학분야의 서적들도 양자역학 이후 더이상 진전하지 못한 채 과학자들이 철학과 인문학을 대신하려는 시도가 점점 한계를 보이고 있어 날이 갈수록 낯선 소설의 창조력에 관심이...

지중해보다 더 아름다운 빛

레무리안2024-02-09

코로나 시절부터 미뤄오던 의형제 아우를 만나기 위해 2월 6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오전 11시경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의 해후라 반갑기도 하고 할 얘기도 많아 부산역에서 곧바로 미포로 나가 바다 앞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25년 동안 의형제로 지내온 좋은 술친구이자 아우인 그와 함께 1박 2일 동안 사람 힐링, 풍경 힐링을 하고 돌아오니 오랫동안 막혀 있던 내면의 환풍구가 모두 열린 것 같아 시원합니다. 다음부터는 약속 없이 어느날 오전 갑자기, 어느날 오후 갑자기 서프라이즈 식으로 부산으로 내려가 ...

서순라길, 입춘 하루 전

레무리안2024-02-04

토요일, 입춘 하루 전 날씨가 봄날 같아서 서순라길로 접어들어 천천히 걸었습니다. 고궁 담 너머의 오래된 나무들에 새순이 돋기에는 이른 시기이지만 대기에는 이미 삼삼한 봄기운이 스며 있었습니다. 완연한 봄이 오기까지 몇 차례의 추위가 더 찾아오겠지만 그런 와중에도 땅속과 수목의 줄기 안에서는 봄기운이 움트고 그것들이 머잖아 봄의 전령사가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마지막에 아브와에 들러 루이보스차를 테이크아웃하고 창조의 기운이 왕동하는 뇌트워크의 세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창조와 사랑, 봄을 부르는 내밀한 명령어...

체감기온 영하 21도의 열기

레무리안2024-01-24

체감기온 영하 21도, 최강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날 오래 전에 약속 잡아둔 음력 망년회를 위해 오전에 집을 나섰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일산 등지에서 오는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 1시간 전쯤 약속장소에 도착해 이디야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한 뜨겁고 진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반가운 얼굴들 만나 이베리코에 소주를 곁들여 담소 나누고 분위기 좋고 따뜻한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시는 동안 어떻게 7시간이 흘러갔는지 아예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상스러움과 잡스러움에 대하여 문학과 인생, 각자의 창작 계획과 한국문...

책을 사냥하는 방식

레무리안2024-01-19

오랜만에 책을 사냥하러 일산 교보문고에 갔습니다. 평상시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검색을 하며 검토 대상이 되는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그것들이 상당 분량 누적되면 한번씩 교보문고에 가서 사냥을 시작합니다. 해당 도서의 위치를 검색으로 찾아 메모하고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전체적 내용을 검토합니다. 그렇게 목록을 다시 추스리는 과정에 여러 권의 대상도서가 탈락하고 마지막까지 구매 대상으로 남는 도서는 몇 권이 되지 않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편의성도 있지만 막상 책을 받아들고 읽다보면 내용에 실망하게 되는...

설국에서 설국으로 가는 꿈

레무리안2024-01-07

어제 강의 끝나고 오후 4시부터 작가들 모임이 있었는데 어둠이 내릴 무렵부터 갑자기 폭설이 쏟아져 밤 9시경 밖으로 나왔을 때 마치 러시아의 도시에서 본 것 같은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날씨가 포근해서 젖은 눈이 내린 탓인데 눈이 쫀닥쫀닥하게 모든 사물에 들러붙어 평상시와는 완전히 다른 설경을 연출했습니다. 토요일이라 익선동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는데 내리는 눈을 보며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한껏 낭만이 충만한 밤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 망연하게 서서 도시의 설경을 감상...

설국에서 보낸 하루

레무리안2023-12-31

토요일, 하루종일 폭설이 쏟아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라도 온 듯한 기분으로 진종일 베란다 앞에 앉아 눈구경을 하다가 날씨가 너무 포근해 눈이 녹아버리는 자정무렵에는 인근 공원에서 멋진 눈사람을 만나 한참 교감하다 돌아왔습니다. 누가 만들어놓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눈사람 표정이 너무 리얼해 저에게 말을 거는 듯한 착각이 일었습니다. 아무려나 멋진 설국에서의 하루였습니다. Happy New Year!

나주, 증강현실, 그리고 소설

레무리안2023-12-21

두어 달 전, 근거를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날아와 난생처음 나주로 가게 하고, '증강현실'이라는 화두를 품게 하더니 그것이 부화에 부화를 거듭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소설을 견디고 견디다 보면 이렇게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도 창작이 강행되는지 근원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만 깊어져갑니다. 아무려나 이렇게 탄생한 소설을 두고 '모든 소설은 이미 다 쓰여져 있다'는 황당한 추리를 하며 이것을 좀더 품고 있다가 2024년 연초에 신년 선물처럼 발표해야겠다고 작정하였습니다. 어떤 연유와 경로로 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