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화이트

레무리안2017-05-05 

자정 지난 시각, 종로 3가의 골목에서 발견한 주인 없는 흰 구두. 어둠 속에서 도발적으로 빛을 발하는 화이트가 너무 미스터리해 일행과 한참동안 구두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구두를 벗어던지고 사라진 주인에 대한 궁금증보다 주인에게 버림 받은 듯한 그것의 티 없는 자태가 보면 볼수록 마음을 저리게 하는 밤이었습니다. 저 구두는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요.   Click on the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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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 남는 것, 남해에 남긴 것

레무리안2017-04-21 

남해에 갔다가 보리암에 간 게 아니고, 보리암에 가기 위해 남해에 갔습니다. 먼 여정. 늦은 오후에 보리암에 당도해 배경의 기암과 전면의 흐린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해수관음상의 뒷모습을 기억에 각인하고 다음날 새벽 일출을 볼 생각이었는데 밤 사이 날씨가 끄무러져 새벽에 일어나자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남해는 몇 번째이지만 갈 때마다 선명하지 않게 의식에 남겨지는 게 있습니다. 남겨지는 게 아니라 내가 남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쨍, 하지 않은 그 무엇. 그것 때문에 보리암 일출...

무대 조명, 인생의 행로

레무리안2017-04-21 

경북 영덕에서 일박하고 일출을 보았습니다. 일출을 볼 때마다 무대 조명을 떠올리면 삶이 자연스레 무대 예술로 인식돼 삶에서 오는 긴장과 강박이 슬그머니 해체됩니다. 어시장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생선 말리는 건조대가 놓여 있었는데 무리 지은 모습이 흡사 살아 있는 고기떼의 이동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고갱의 거대 벽화가 떠오른 건 건조되는 고기떼에서 우리네 삶이 엿보여서였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날마다 뜨고 지는 무대...

탄핵-고량주-스파이더맨

레무리안2017-04-16 

이 사진을 찍은 날짜는 2017년 3월 10일. 그날은 헌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만장 일치로 인정한 날입니다. 그날 탄핵이 인정되기 몇십 분 전부터 저는 홍대앞의 4층 식당에 앉아 연태고량주를 마시며 스파이더맨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탄핵-고량주-스파이더맨 사이에 무슨 상관 관계가 있을까요.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이 서로 심각하게 얽힐 때가 더러 있는데 상관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짧은 인지 능력일 뿐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이 세상에 상관 없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

레드홀 주변

레무리안2017-03-24 

어느날 밤, 휴대폰에 이런 사진이 찍혀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아마도 엉뚱한 곳에 시선이 끌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전체 속에 숨어 있는 부분, 부분 속에 숨어 있는 전체에 집중하면 기이하게도 자신이 소멸되는 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멍 때리는 순간, 우리는 평상시에 도저히 볼 수 없는 순간을 포착하게 됩니다. 휴대폰에 담긴 여러 장의 사진을 확인한 결과, 이것은 음식이 담긴 스테인레스 그릇의 내부를 찍은 것입니다. 어이가 없죠?ㅎㅎ   Click on the ...

영덕, 동해

레무리안2017-03-01 

가랑비가 내리는 날, 영덕에 갔습니다. 어시장을 둘러보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셨습니다. 잔뜩 끄무러진 날빛에도 불구하고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져 긴 겨울의 잔해가 파도에 떠밀려 포말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유난히 길고 지리멸렬하게 느껴진 겨울, 이제 슬슬 기지개를 켜고 낯선 봄을 맞이해야겠습니다.   Click on the photo! 

사마디

레무리안2017-02-16 

겨울 아침, 햇살이 빙판으로 밀려들 때 부리가 붉은 새가 빛의 가장자리로 걸어갑니다. 저 새의 부리가 붉다는 건 내가 녀석을 호수공원에서 여러 번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름 아침에는 자기 치장에 무척 신경을 쓰는 녀석인데 겨울에는 왠지 쓸쓸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자기 생존을 위해 집중하는 걸음걸이와 빛의 침투로 자연스런 삼매경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무의식적 집중에 대해 우리는 저 새처럼 살아지니까 산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창한 목...

동심을 만난 아침

레무리안2017-02-01 

밤새 눈이 많이 내린 날 아침, 운동을 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더니 집앞 벤치에 이렇게 앙증맞은 눈사람 둘이 만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눈이 내리면 동네아이들과 강아지들이 한데 어울려 뛰노는 걸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풍경을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던 동심에 디지털 문명이 스며들어 눈보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만화가 아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듯합니다. 이른 아침, 눈사람을 만들고 간 동심이 새삼 소중하고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

유령의 방

레무리안2017-01-23 

중국에서 찍은 사진인데, 보시는 분들의 상상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사진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즐감하시길!^^   Click on the photo!

재즈 바, 당선축하연

레무리안2017-01-02 

12월 31일 밤, 익선동 재즈바 '천년동안도'에서 세 명의 신춘문예 당선자와 문학사상, 작가세계, 김유정문학상 신인상 당선자를 위한 축하연 겸 송년의 밤 행사를 가졌습니다.  병신년, 아프게 보낸 한 해였지만 그 마지막 결실은 위대했습니다. 정유년, 리셋 코리아를 기대하며!   Click on the photo!    

후난성 창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레무리안2016-12-12 

중국 후난성 창사시 남목청 6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물이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한국의 재개발지구처럼 어수선한 뒷골목 끄트머리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1937년 회의를 하던 도중 김구 선생은 총을 맞기도 했습니다. 2007년 중국 정부에서 시급문화재로 지정, 2009년에 복원한 건물입니다. 이곳에 살던 십여 가구의 주민들로부터 8억여 원에 건물을 사들여 중국 정부가 직접 관리한다고 하니 박근혜-최순실로 나라가 어지러운 판국인지라 비참한 심정에 절로 탄식이 터져나왔습니다. 이렇게 목숨 걸고 나라를...

황룡동,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유동굴

레무리안2016-12-05 

총 면적 10만 평방미터, 총 길이 7.5km, 높이 140m. 동굴은 총 4개 층으로 나뉘어져 있고 동굴 속에 또 다른 동굴도 있고 강도 흐르고 있습니다. 3억 8천만년 전에 생성된 동굴로 원래 바다였으나 6500만년 전 지각 변동으로 솟아올랐다고 합니다. 21세기, 지구상에서 이와같은 대대적 지각 변동이 일어나리라는 예측이 자주 나오고 있어 신기하면서도 막막한 심성으로 둘러보았습니다.   Click on the photo!  

무릉원 보봉호

레무리안2016-11-18 

후난성(湖南省) 우링위안(武陵源) 바오펑후(寶峰湖).   비 내리는 날,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원래는 수력발전과 양어장으로 사용하던 곳인데 말레이시아 사람이 투자하여 관광지로 개발하였다고 합니다. 해발 430m에 위치한 호수 주변에서 토가족 청춘남녀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짱'이라는 산사람들의 풍습이 너무 소박하고 천진난만해 돈 들여 개발한 풍경보다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중국 후난성 톈먼산(湖南省 天門山)

레무리안2016-11-15 

해발 1,517m, 신의 산이라 불리는 톈먼산. '하늘로 오르는 문[天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으로 올라가는 상상초월의 굽이길에도 '하늘로 통하는 길(通天大道)'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기 싫어하는 듯 정상에는 비와 운무가 뒤덮여 귀곡잔도(鬼谷棧道)의 천길 낭떠러지도 몽실몽실한 솜이불처럼 몽환적으로 보였습니다. 밤에는 톈먼산을 배경으로 500명이 출연하는 뮤지컬 공연을 보았는데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산 전체에 ...

광화문의 가을

레무리안2016-11-04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에 서울 문학의 집에서 예술원 낭송회가 있어 모처럼 외출했습니다. 오랜만에 광화문과 교보문고 등지에서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한 시간 반 정도 여유를 두고 일산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하지만 막상 광화문에 당도했을 때, 그곳이 내가 알던 광화문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해에 광화문에서 느껴지던 가을의 넉넉한 정취와 정감은 종적을 감추고 스산하고 허전한 에너지의 잔해만 어른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어색함을 견디기 어려워 도망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