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에
서울 문학의 집에서 예술원 낭송회가 있어 모처럼 외출했습니다.
오랜만에 광화문과 교보문고 등지에서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한 시간 반 정도 여유를 두고 일산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하지만 막상 광화문에 당도했을 때,
그곳이 내가 알던 광화문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다른 해에 광화문에서 느껴지던 가을의 넉넉한 정취와 정감은 종적을 감추고
스산하고 허전한 에너지의 잔해만 어른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어색함을 견디기 어려워 도망치듯 3층 커피숍으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종대왕 동상을 건너다보며 한 사람이 쓸쓸하게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최순실로부터 시작된 국가적 우울증이 압축된 장면 같아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망연하게 앉아 있다가 광화문을 떠났습니다.
몇 시간 뒤, 귀가하기 위해 다시 돌아온 광화문의 밤,
어둠 속에서 가녀리게, 안쓰럽게 촛불들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게 나라냐!, 이게 누구의 나라냐!
뿌리 깊은 권력의 어둠, 어둠의 권력을 향해 불꽃들은 묻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없이 어둡지만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세상을 향해
그것들은 또한 의연하게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둠에 파묻혔던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절,
어둠에 의존해서는 살 수가 없다는 걸 냉혹하게 일깨우는 시절,
투명한 세상이 다가오는 밝은 조짐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이토록 깊은 울증을 무슨 수로 견뎌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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