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고간

하늘정원의 한 극단

레무리안2018-08-17

20180705 5:46, 18 Marina Garens Dr, Singapore 018953 2018년 6월 11일 심야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외출하여 찾아간 곳, 8월에는 한국 삼성의 갤럭시 노트9 출시 기념행사를 한 곳이기도 합니다. Flower Dome-Cloud Forest, Gardens by the Bay, Singapore. 싱가포르가 핵심인지 식물원이 핵심인지 애매모호하지만 싱가포르의 장삿속이 잘 먹히는 시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오래 전 도서관에서 『식물도 생각한다』는 책을 대출해서 읽었었는데 저렇게 거대한 식물원에서 사람들이 식물을 구경하는 동안 사람들을 구경하는...

SONY ZONE

레무리안2018-08-16

20180704 18:37, 5 Raffles Ave, Singapore 039797 그날 그 순간, 왜 나는 나에게 포착되었을까요? 결정이 이루어진 뒤에 인간은 결정의 배경과 과정에 의구심을 품게 됩니다. 가속력의 법칙 F=ma 혹은 우연이나 필연의 결과? 시도하지 않은 것조차 시도 이전에 계획되는 시뮬레이션 우주를 상상합니다. 저 순간, 소니 카메라에 포착된 피사체는 SONY ZONE에 갇혀 있지만 저 피사체의 안쪽에 기록되어 있는 히스토리는 외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시뮬레이션 세계가 들통나지 않게 하는 마지막 보루, 히스토리 너머에는 히스토리의 인과가...

견성을 목도하는 사원의 오후

레무리안2018-08-08

20180703 13:34, JI. Cipayung Raya East Jakarta, Jakarta 13840, Indonesia 자카르타의 한 사원에서 만난 고양이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뒤로 걸어가고 인기척이 들려도 세상만사에 관심을 끊었다는 듯 초연한 자세로 앉아 자신의 내면에 깊이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견성이라는 것이 어찌 사람의 몫일 수만 있으랴, 동물이라고 해서 견성을 얻지 못하란 법이 어디 있으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기이한 순간이었습니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 안에 드리워진 그것의 그것! I AM THAT!

싱가포르의 잠 못 드는 밤

레무리안2018-07-12

20180704 12:27, 5 Raffles Ave, Singapore 039797 인공에 의한, 인공을 위한, 인공의 나라. 사람들은 싱가포르의 표면을 보고, 표면만 보고 그곳을 인공낙원이라고 경탄하곤 합니다. 그런데 왜 나는 표면이 보이지 않고 이면의 이미지가 더욱 강렬하게 자극 받는 것인지 밤이 깊어도 잠이 오지 않아 내내 야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야경이 야경꾼처럼 잠을 소멸시켜 평형기관이 흔들리고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별과 달과 행성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어질머리를 느껴야 했습니다. 야경의 나라, 불면의 나라, 동화...

Mystic Mood in Jakarta

레무리안2018-07-10

20180702 20:04 JI Teuku Umar No.6, RT.1, Gondangdia, Menteng, Kota Jakarta Pusat, Daerah Khusus Ibukota Jakarta 10350 Indonesia 자카르타에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대상입니다. 저 인물을 만난 장소가 Tugu Kunstkring Paleis라는 식당의 갤러리였는데 저 그림 하나의 발견으로 인도네시아에 대한 내면의 결핍이 말끔히 해갈되는 걸 느꼈습니다. 제가 느낀 결핍의 요체는 <인도네시아에는 인도네시아가 없다>로 요약될 것이었는데 일종의 상실을 구체화하는 의미에서 저 그림은 보상의 의미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저 그림...

호찌민과 사이공 사이

레무리안2018-06-29

예전에 우리는 호찌민을 호지명(胡志明)이라는 한자명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베트남의 혁명가이자 정치가였고 구(舊)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초대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그의 본명은 응웬 닷 탕(Nguyen Tat Thanh)이지만 어릴 적 이름은 응웬 싱 콘이라고 불렸으며 파란 많은 인생의 질곡을 말해 주듯 그에게는 160여 개의 가명과 필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호찌민시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지만 제가 어렸을 때 그 도시의 이름은 사이공이었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과 그 후의 독립국인 남베트남의 수도이기도 했던 사이공은 19...

하노이 일루전

레무리안2018-06-26

하노이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아열대 습윤기후라 엄청 무덥지만 하노이는 기원전 3천 경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행정 중심도시라서인지 전체적으로 차분해 보이지만 이면에 고인 정체된 에너지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지층으로 잦아드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도시를 '고담 시티'라는 별칭으로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밤의 루프탑 카페에서 비를 맞으며 맥주 두 병을 마시는 동안 젊은이들이 모...

장미 한 송이

레무리안2018-06-10

일요일 새벽, 오랜만에 호수공원으로 갔습니다. 지난 밤 내린 비로 수목이 촉촉하게 젖은 기운을 내뿜고 유월의 장미원에는 온갖 장미가 만개해 있었습니다. 그 많은 장미 중에 단 한 송이,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을 카메라에 담아와 공유합니다. Happy Sunday!_()_

아쿠아리움

레무리안2018-06-08

아쿠아리움을 좋아하지만 그곳에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 지치고 번잡할 때 고즈넉하게 앉아 물고기들의 유영을 지켜보노라면 마음이 절로 평정을 되찾습니다. 그래서 슬리퍼를 끌고 편안한 차림으로 아무 때나 오가고 싶지만 그런 곳으로 한번 발길을 내려면 상당한 준비와 마음가짐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내가 사는 일산의 킨텍스에도 아쿠아리움이 있지만 아직 미답 상태인데 엉뚱하게도 잠실까지 가서 우연히 아쿠아리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류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본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웠던 순간...

멧비둘기 소동

레무리안2018-05-08

오늘 아침, 아파트 베란다 창틀에 멧비둘기가 날아와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동네 참새들을 위해 화단에 약간의 쌀을 뿌려주기 때문에 날마다 녀석들이 포릉거리며 떼지어 놀러오곤 하는데 오늘처럼 멧비둘기가 창틀에 앉아 저토록 태연한 표정으로 실내를 들여다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내가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댔지만 날아가지 않고 한참이 지난 뒤에 느긋한 동작으로 등을 보이며 돌아앉았을 뿐입니다. 사진을 찍어대는 동안 뒤쪽에 앉아 있던 민트가 드디어 사태를 알아차리고 쏜살같이 타워로 올라가 멧비둘기를 향해...

봄을 주시함

레무리안2018-03-29

봄이 더디고 힘겹게 오는 느낌입니다. 흉흉한 세상의 기운에 미세먼지와 황사까지 겹쳐 봄을 바라보는 심사가 몹시 불온합니다. 나만 그런가, 심중에 의구심이 떨쳐지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아침, 부신 햇살을 받으며 민트가 아파트 정원을 내다보는 자세에서 기이한 감정이입이 느껴져 묘한 위안을 받았습니다. 녀석과 내가 이심전심으로 느끼는 불온한 봄이 스러지고 하루 빨리 맑고 쾌청하고 개운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중앙일보] 더, 오래 인생 샷

레무리안2018-02-05

http://mnews.joins.com/article/22339284#home

달이냐 조명이냐

레무리안2018-01-31

Photo took by Galaxy S6 edge+ 35년만에 뜬다는 슈퍼문, 블루문, 블러드 문이라고 해서 밤에 달을 보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8시 40분경부터 개기월식이 시작되는 걸 한동안 올려다보다가 다만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지구평면설이 횡행하고, 태양과 달이 지구 내부에 있다는 주장이 퍼져나가는 즈음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숱한 관련 영상들을 훑어보노라면 태양과 달이 리모컨으로 조종되는 조명등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오래 전에 보았던 '트루먼 쇼'가 생각나는 밤입니다.

동해에서 빙해까지

레무리안2018-01-29

1월 23일과 24일, 장편소설 집필을 위해 동해안 취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영하 18도의 혹한에 살점이 떨어져나갈 듯한 바람이 불어 얼굴과 손을 노출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러 해변의 횟집으로 갔더니 수족관의 물고기들이 모두 얼어죽어 상인들이 겁에 질린 표정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닷물이 언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바닷물이 얼어붙은 진풍경을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난번 북쪽 바다에서 느꼈던 나른한 정서가 무색하게 밤새도록 미친 듯한 파도의 굉음이 골을 후벼파 잠을 이루...

2018, 동해 일출

레무리안2018-01-22

동해에 일출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이십대 때 소주를 마시며 진하게 읽던 장영수의 '동해'와 '메이비'가 생각나는 여정이었습니다. 동해는 언제나 '동해'라는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동해의 죽음을, 아니 이미 주검이 된 기운을 내내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바다가 죽을 수 있을까? 이미 죽어서도 바다 시늉을 할 수 있을까? 눈이 많이 내리는 밤에 홀로 생각에 감겨 봅니다. * 동해 1 장영수 <겨울에, 내 사촌과 바닷가에서, 한 모래 위에서, 검은 바위들을 들이받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