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고간

고아의 역설

레무리안2022-03-06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가 재판을 받을 때,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저는 고아입니다.” 프랑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과거-현재-미래

레무리안2022-03-06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주적인 질서 속에 배치돼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편집되고 수정된다. 현재의 삶에서 발생하는 체험적 요소가 과거라는 기억의 공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 구도에서 볼 때 미래는 현재 시점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프로그램 언어이다. 미래라는 프로그램 언어는 타임캡슐처럼 적정한 시간에 현재화되면서 인간으로 하여금 미션을 부여받게 만든다. 그것을 처리하는 데에는 선택적 의지가 작용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은 미래의 언어를 불...

투사

레무리안2022-03-06

타인을 적으로 만드는 것, 자신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결핍과 소유

레무리안2022-03-06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으로 우는 사람이 많다. 남들에게는 있는데 왜 나에게는 없는가, 울고 한탄하고 원망하고 저주한다. 그것을 사람들은 불행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갖게 됐을 때부터 사람은 고뇌해야 한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그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갖지 못한 사람은 결핍 때문에 울고, 가진 사람은 소유 때문에 우는 게 세상이다. 남이 가진 것은 나에게 없고, 내가 가진 것은 남에게 없다. 그것을 알고 나면 억울할 게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불행이나 운명...

영혼과 육체

레무리안2022-03-06

사람들은 흔히 육체 안에 영혼이 있다고 말한다. 영혼 안에 육체가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거울과 종교

레무리안2022-03-06

자신을 의식할 때와 타인을 의식할 때가 있다. 자신을 의식하는 건 깊이의 문제로 발전할 수 있고, 타인을 의식하는 건 넓이의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깊이에도 넓이가 있고, 넓이에도 깊이가 있다. 나를 통해 타인을 보고, 타인을 통해 나를 보는 것―그것의 물리적 완성이 거울이고, 그것의 세속적 완성이 종교이다.

가면 뒤의 실체

레무리안2022-03-06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퍼슨(person)’은 ‘인격’을 뜻하는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리고 페르소나는 원래 ‘가면을 쓰다’라는 의미이다. 사람 혹은 인격이 가면에 가려져 있다고 판단한 옛사람들의 통찰이 섬뜩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왜 가면을 썼느냐’가 아니라 ‘가면 뒤에 숨겨진 존재의 실체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평생 쓰고 살아가는 가면 뒤에 숨겨진 존재의 실체―그것을 깨달으면 가면이 절로 벗겨진...

이별의 가르침

레무리안2022-03-06

사람들은 이별을 두려워한다. 아파하고, 슬퍼하고, 심지어 그것 때문에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이별이 아주 끝인 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과 영혼의 행로를 놓고 보면 그것은 아주 작은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별과 맞닿아 있는 새로운 시작이 씨줄과 날줄을 엮어 각자의 인생을 직조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9할은 이별이고, 이별을 통해 인생은 끝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별이 없다면 우정도 사랑도 의미를 얻을 수 없다. 이별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지나간 관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이별의 누적은 ...

걸어다니는 시체

레무리안2022-03-06

세상에는 걸어다니는 시체들이 너무 많다. 숨이 붙어 있는 기이한 시체들이다. 귀신은 귀신을 알아보지만 시체는 시체를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들이 다 살아 있는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차가움과 따뜻함

레무리안2022-03-06

사람의 마음에는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사람은 그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살이를 핑계 삼아 사람들은 그것을 구사하지 않는다. 예컨대 따뜻한 마음을 써야 할 때 차가운 마음을 쓰고, 차가운 마음을 써야 할 때 오히려 열을 내기도 한다. 그리하여 차가움과 따뜻함이 한 몸에 공존하게 만든 창조주의 의도가 무색해진다. 날씨가 추울 때 입에 손을 대고 호호 불어 보라. 당연히 따뜻한 입김이 나온다. 반대로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 후후 입김을 내불어 보라. 당연히 차가운 바람이 나온다....

환의 뿌리

레무리안2022-03-06

정신적 병(病)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 환(幻)이 된다.

걸음걸이

레무리안2022-03-06

공원의 벤치에 앉아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본다. 사람마다 걸음걸이가 모두 다르다. 걸음걸이만 유심히 지켜보노라면 천차만별 각양각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걸음걸이에도 표정이 있고, 감정이 있고, 인생관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걸음걸이에 배어나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는 인생에 대한 깊은 체념과 좌절을 반영하고,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는 인생에 대한 당찬 의욕을 반영한다.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에는 증오가 가득하다. 어떤 사람의 걸음걸이는 잘 가꾼 인생의 정원처럼 질서정연하고, 어떤 사람의 걸음...

팔부능선

레무리안2022-03-06

팔부능선을 타고 목표지점까지 가라. 욕망의 수직 상승 욕구는 일시적인 정상을 목표로 삼을 수 있지만 인생의 수평적 진행 과정은 일시적인 정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드러내는 삶이나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드러낸 뒤에 남는 게 허망한 내리막뿐이라는 걸 명심하라.

금강석 같은 고독

레무리안2022-03-06

진정한 삶의 호사(豪奢)는 혼자 있을 때 완성되는 금강석 같은 고독이다. 그것은 자기 일에 집중할 줄 알고, 그것으로부터 성취를 이끌어낼 줄 아는 사람들에게서 우러나는 내면의 기품이다. 물론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호사의 개념에는 물질적인 오해가 팽만하다. 물질적인 호사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꾸미고 치장할 수 있지만 인생의 깊이에서 우러나는 내면의 기품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집단과 개인

레무리안2022-03-06

인간 세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집단이다. 대상으로서의 집단보다 자기 자신이 집단의 일원이 되었을 때, 집단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집단은 개체의 지혜와 판단력을 동시에 흐리게 하고, 개체는 집단의 힘과 저돌성에 간사하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