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고간

달마의 눈꺼풀

레무리안2023-01-23

달마는 소림사에서 9년 동안 정진했다. 그는 더 이상 잠을 자지 않겠다고 서약했고 오랫동안 그것을 지켰다. 먹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눈을 깜빡이지도 않는 수행의 나날.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공든 탑이 무너진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칼을 가져다 자신의 눈꺼풀을 베어내 땅에 묻었다. 그리하여 그의 눈은 더 이상 감기지 않게 되었다. 뒷날, 그의 눈꺼풀을 묻은 곳에서 사람 눈꺼풀 모양의 새순이 달린 관목이 자라났다. 새순을 달여 먹으니 잠이 달아나고 정신이 맑아졌다. 그것이...

라이벌이라는 이름의 동반자

레무리안2022-12-21

사람은 누구나 경쟁 상대를 가지고 있다. 뜻이 잘 맞는 단짝이 있는 것처럼 사사건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맞수가 있게 마련이다. 그 대상을 우리는 라이벌이라고 부른다. 라이벌을 경쟁 대상이라 하여 적대시하거나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 많다. 뿐만 아니라 라이벌과의 경쟁이 싫다고 하여 세속적인 삶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라이벌은 인간과 인생을 진화하게 만드는 훌륭한 자극제이다. 라이벌과의 무한 경쟁이 때로는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인간의 영혼을 진화시키기 위해 그만큼 훌륭한 학습 프...

가장 훌륭한 자살 방법

레무리안2022-11-30

자살은 타고난 성정과 현실적인 조건 사이의 치열하고 치밀한 쟁투 끝에 도달하게 되는 허무의 관문이다. 가장 훌륭한 자살 방법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최선을 다하며 죽어가는 것, 즉 사는 것이다. 자살의 다른 모습이 삶이고, 삶의 다른 모습이 곧 자살인 것이다. 자살을 뒤집어 발음해 보라.

마음의 천국에 이르는 길

레무리안2022-10-25

하고 싶은 일만 하려 하지 말고 하기 싫은 일, 귀찮다고 생각되는 일에 끈덕지게 도전하라. 하고 싶은 일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하기 싫거나 귀찮은 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에고는 그것을 전도된 의식으로 제시하며 인간을 갈등하게 만든다. 하기 싫은 일이 없어진 일상, 그것이 마음의 천국이다.

운명적 제한

레무리안2022-10-02

인간에게 눈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눈이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오감이 없다면 초감각적 인지(extrasensory perception: ESP)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 인간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끼는 모든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을 느끼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운명적 제한이다.

우연과 필연

레무리안2022-08-30

필연은 항상 하나의 점과 같은 사소한 발단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그것은 우연한 존재의 출현이나 우연한 사건 혹은 해프닝 같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음으로 양으로 이어지고 엮이면서 조성되는 건 결국 엉뚱한 필연이다. 신의 의지가 깃들인 필연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우연이 위장막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당신 주변에서 일어났던 필연적인 일을 처음 발생 시점으로부터 점과 점으로 연결해 보라. 인생을 소재로 한 신의 시나리오 창조 기법, 다시 말해 우연과 필연을 구사하는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을 눈치채게 될 ...

지식과 지혜

레무리안2022-07-29

세상을 크게 어지럽게 만드는 문제적 인물들은 대부분 많이 배운 사람들, 즉 지식인들이지 지혜를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산 농부도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여 자연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다. 그는 24절기가 무엇인지 몰라도 때가 되면 몸으로 모든 것을 알고 필요한 일을 한다. 인생에서 얻는 지혜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어서 하나를 터득하면 그것이 싹을 틔워 세상 만물의 이치를 절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혜를 터득하지 못하면 박사 할아비가 되어도 일자무식한 농부...

일심동체, 이심이체

레무리안2022-07-14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다. 부부는 이심이체이다. 이 자명한 사실에 대한 무반성적인 왜곡이 사랑과 결혼을 파괴한다. 그것이 만약 관념적 상징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일심동체에 대한 턱없는 환상은 더욱 사라져야 하고 이심이체에 대한 실체적 이해는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나는 무엇인가

레무리안2022-06-26

인생은 하나로 통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건, 그것은 결국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귀의 과정이다.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고 묻지 말고 '나는 무엇인가(What am I)'라고 물어야 한다. 그것에 이르지 못하고, 그것을 각성하지 못하면 살아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다 살고도 태어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마음의 한 겹

레무리안2022-06-06

내 마음의 한 겹을 걷고 보면 상대방의 열 겹을 모르고 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한 겹을 걷기 위해 우리는 매번 가슴 전체를 열어야 한다. 그 한 겹마저 걷어보지 못한 채 영원히 이해의 차원 밖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주적인 시각, 위성적인 사고방식

레무리안2022-05-04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적 여건 안에 천국과 지옥이 내재해 있다는 걸 모른다.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부정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강조하거나 강화하면서 자신의 나태와 불성실을 정당화하려는 얄팍한 심리도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면 시간적 여백은 물론 정신적 여백까지 넓어지는 걸 경험할 것이다. 우리는 좁은 지구에 살지만, 좁은 지구에 살기 때문에 항상 우주적인 배경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건을 우주적인 시각으로 ...

존재 증명의 욕구

레무리안2022-04-21

인간의 욕망은 본능적으로 존재 증명의 욕구를 반영한다.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 사람의 심리적 동기도 역시 존재 증명의 욕구를 반영한다. 가난해서 죽어라 돈을 버는 사람들, 돈이 많아도 더 많은 돈을 벌려 하는 사람들, 높은 직위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더 많은 권력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욕구는 얼마나 소중...

취중천국

레무리안2022-04-11

술은 의식의 리듬을 파괴한다. 불안에 떨거나 불안정한 의식의 소유자들이 술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그것을 입증한다. 술에 의해 파괴된 영혼은 일시적인 천국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면 현실이 지옥처럼 여겨져 맑은 정신으로 견디기 어려워진다. 술에 취해 있는 동안의 천국이 깨어날 때 지옥으로 변한다는 건 정말 끔찍스런 고통이 아닌가. 세상을 견디는 힘은 의식의 리듬을 유지하는 관성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이 지옥 같을수록 의식의 리듬을 더욱 다잡고, 술이 선사하는 일시적인 천국(깨고 나면 지옥!)에의...

그것의 정체

레무리안2022-04-03

바람이 지나갈 때 지상의 사물은 그것에 반응한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흔들리거나, 구부러지거나, 뒤집히거나, 쓰러지거나, 꺾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를 몰고 오는 바람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바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의 실체가 아니라 그것에 반응하는 사물의 양태일 뿐이다. 인간도 날마다 뭔가에 반응한다. 언어와 몸짓이 만들어내는 온갖 양태의 반응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다. 바람과 같은 무엇인가가 날마다 인간들을 지나쳐간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바람처럼 그것도 역시 보이...

인성의 반쪽

레무리안2022-04-02

인성에는 마성이 숨겨져 있다.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인성의 반쪽 구조이다. 반인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