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고간

레무리안2022-03-23

인간이 무리 지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보이지 않는 기류가 흐르기 마련이다. 차가운 것과 따뜻한 것이 무시로 교차되는 바닷속의 해류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 넓고 잔잔한 해수면 밑으로 양극의 기류가 서로 교차되는 것처럼, 무리 지은 인간의 세계에서도 서로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기류가 끝없이 맞부딪치며 마찰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 기류들의 은밀한 쟁투가 세상 흐름의 전부인 것처럼 오도되지만, 아주 때때로 우리는 그 기류의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않는 독자적인 존재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존재는 스스로...

불안감

레무리안2022-03-20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불안감―그것이 때로 삶의 추진력이 되어 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추진력을 당연시하거나 혹은 그것에 의존하려는 태도는 어리석다. 그 추진력은 갈수록 빨라지지만, 아무리 가도 종착지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수 없는 추진력을 소유한 사람들은 불행하리라. 그들이 바로 불안감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들, 신을 상실한 영혼의 미아들이기 때문이다.

고독의 생산성

레무리안2022-03-16

세상에 의미 있게 남겨지는 건 모두 고독의 산물이다. 방황과 나태와 쾌락은 인생의 소모와 탕진을 부추길 뿐, 순간을 모면하려는 자기기피 이외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과의 치열한 조우, 그것이 고독의 핵심이다. 고독이 없다면 인간은 뜻 깊은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것을 왜 피하려 하는가.

경계선상에 머무는 존재들

레무리안2022-03-13

청춘은 경계선상에 머무는 존재들이다. 빛과 어둠, 선과 악, 비상과 추락, 희망과 절망 사이에 존재하며 끊임없이 유혹에 시달리는 존재들. 그들은 그들 자체로 온전하지 못하다. 경계는 매순간 허물어질 수 있고, 각성하는 순간 문득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레무리안2022-03-11

인생은 고독과 동거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고, 고독하기 때문에 인간이다. 고독을 자각하지 못하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뿐만 아니라 고독은 인간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모름지기 고독을 알아야 인간을 알고, 인간을 알아야 인생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고독과 싸우려 한다.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떨쳐버리고 다른 상태로 돌입하고 싶어한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 자신을 위로해주는 사람을 꿈꾸게 된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 고독을 결핍으로 받아들이...

'우리는 하나'라는 말

레무리안2022-03-09

하나의 씨앗이 발아한다. 뿌리가 자라고 줄기가 자란다. 줄기에서 가지가 나고 잎이 생긴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결실이 이루어져 하나가 많은 하나를 낳는다. 그 하나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들의 근원은 처음의 하나, 다시 말해 처음의 하나가 많은 하나 속에 근원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고립된 하나, 차단된 하나, 일탈한 하나가 남는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생명의식의 네트워크를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하나는 시작을 의미하는 하나인 ...

잘 여문 과일 씨앗처럼

레무리안2022-03-08

어느 날, 고독이 다가와 문득 말을 걸 때가 있다. 깊은 밤 혼자 라면을 끓여먹을 때, 새벽에 잠에서 깨어 유리처럼 맑은 정신이 느껴질 때, 길을 걷다가 문득 자신이 유리 동물원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때, 바다 앞에 서서 우주의 기슭에 혼자 서 있는 자신을 자각할 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이 떠나온 별을 찾고 싶어질 때…… 고독은 소리 없이 찾아와 은밀하게 인간의 어깨를 건드린다. 돌아보면 아주 익숙한 표정으로 낯설게 말을 건다. 그것이 고독의 화법이기 때문이다. ―이봐, 왜 그렇게 울상을 짓고...

예술의 경지

레무리안2022-03-06

스쳐가는 것들도 스쳐보내지 못하는 영혼은 악마적이다. 그것을 의식하거나 자각하며 생애를 일관하고자 하는 의지는 더욱 악마적이다. 하지만 예술이란 악마적인 삶의 정수이거나 그것의 총화이다. 악마적인 영지를 포기할 때, 예술은 오히려 선(善)과 무관해지기 때문이다.

풍경의 일부

레무리안2022-03-06

풍경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이다. 태양과 바람과 구름과 파도 같은 자연도 움직이지만 사람의 움직임은 가장 아름다운 율동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면 천상의 아름다움을 재현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은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자신이 풍경의 중심이라는 자만심이 생기면 그 즉시 풍경은 스러져버린다. 자신이 풍경의 일부라는 걸 자각해야 비로소 자신을 에워싼 풍경이 완성되는 것이다. 날마다 뜨고 지는 태양,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사람도 역시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풍경의 세계

레무리안2022-03-06

젊은 날, 사람들은 풍경을 보지 못한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서도 자신에 집중하고, 풍경을 보면서도 내면에 몰두하려는 경향이 강한 게 젊음의 특징이다. 때문에 젊음은 강렬하지만 상처받기 쉽다. 자신의 진정한 의미, 주변과의 조화로운 관계에 눈을 뜨지 못한 채 어두운 심연을 방황하기 십상이다. 당연한 결과, 젊은이들은 풍경을 감상하지 못하고 자신을 즐기는 일에 몰두한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 나를 에워싼 세상의 의미를 자각하지 못한 결과이다. 요컨대 마음의 벽에 가려 풍경을...

하루와 인생

레무리안2022-03-06

인생은 하루와 같고, 하루는 인생과 같다. 생활계획표대로 하루를 실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하루의 시작이 인생의 시작과 같고, 하루를 보냄이 인생을 보냄과 같고, 하루를 끝냄이 인생을 끝냄과 같다는 것. 지금 우리가 아무런 자각도 없이 보내고 있는 이 숱한 하루하루가 결국 우리 인생의 키워드라는 걸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어느 하루도 온전하게 살아보지 못하고 죽는 인생은 얼마나 가련한가.

타자에 대한 타자의 거리

레무리안2022-03-06

속물을 욕하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 속물이 되어볼 필요가 있다. 자신에 대해 타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듯, 타자에 대한 자기 동일시도 인간에게는 또한 필요한 것이다. 그런 경험에 숙달되지 않고는 타자에 대한 타자의 경지, 다시 말해 사물에 대한 관조적 거리감을 확보할 수 없으리라.

감수성

레무리안2022-03-06

현실이란 직시되는 게 아니라 감지되는 것이다. 감수성을 가꾸지 않을 때, 현실에 대한 감응력은 절로 무뎌진다. 감수성이란 세상의 무쌍한 변화를 통시적으로 받아들이는 레이더와 같은 것. 그것에 의해 현실에 대한 감응력이 고양될 때, 인간에게는 단순한 관망의 정도를 넘어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 생기게 된다.

젊음과 늙음

레무리안2022-03-06

시간을 정신적 상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사람이고, 그것을 물리적인 상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늙은 사람이다. 정신적으로 젊은 사람은 물리적으로 늙을 수 있지만, 물리적으로 늙은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정신적으로 젊을 수 없다.

중독

레무리안2022-03-06

인간의 삶은 중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식을 먹는 일, 담배를 피우는 일, 사람을 만나는 일, 술을 마시는 일, 섹스를 하는 일 등등이 모두 되풀이되는 중독이다. 인간은 중독으로 나날을 살고, 중독으로 나날이 황폐해져 간다. 만약 단 한 가지만이라도 의지를 가지고 중독을 끊을 수 있다면, 그만큼 인생은 창조성을 지닌 공간으로 되살아난다. 중독을 중독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일,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중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