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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옇게 흐려진 세숫물 위로 코피가 뚝뚝 떨어지던 날 아침, 나는 벽을 짚고 서서 오랫동안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얼굴, 코피를 흘리는 병든 초상이 거기 있었다. 그것을 들여다보던 어느 순간, 나는 이빨을 드러내고 정신이 박약한 인간처럼 웃어보았다. 드라큘라 같았다. 주먹, 그리고 부서져 내리는 거울 조각…… 사막은 적막했다.
여자가 나의 의식에 나도 모르게 끼친 영향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날 오전의 기온이 연평균보다 5℃ 낮아진 11시 55분경이었다. 그 전날 밤 나는 그녀의 몸속에다 두 번의 사정을 했고, 그녀는 나에게 세 번의 사정을 원했었다. 모든 것이 말라버렸다고, 이제 더 이상 무엇인가를 기대해선 안 된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말없이 일어나 앉아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말은 못해도 언제나 내가 말하고 싶어 한 것은 인간적인 것이었다. 검은 모래 폭풍이 끝없이 휘몰아치는데, 그런데도 귀가 먹먹할 정도로 적막한 사막의 무풍지대. 나는 한동안 로트레아몽의 예리한 주머니칼을 생각했다. 여자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동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칼이 결국 나 자신을 향하게 되리라는 걸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미친 듯 횡행하는 광기의 파편처럼 쩡, 쩡, 어디에선가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랑 따위, 그런 고상한 말 내 앞에서 하지 마.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 건 당신이 스스로 길을 못 찾고 있기 때문이야. 이 사막에 아직도 사랑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얼간이가 있다니…… 웃기는 일이지만 결코 놀랄 만한 일은 아니야. 내 몸을 애무하고 내 몸속에 씨를 뿌렸다고 해서 달리질 게 뭐가 있어? 내 몸속에서는 더 이상 생명이 자랄 수 없어. 내가 사막이기 때문이지. 한 줌 모래로 만나 서로 즐기고, 한 줌 모래로 다시 흩어지면 그것으로 그만인 거야.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그게 사막의 사랑법이니까.” -소설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