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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세계 배후의 절대적 존재를 철학에서는 신(神), 이데아(idea), 브라흐만(brahman)이라고 합니다.
인간 배후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실재를 철학에서는 자아, 정신 혹은 아트만(atman)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인도의 우파니샤드는 범아일여(梵我一如),
그리스에서는 대우주(macrocosmos)와 소우주(microcosmos),
중국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성즉리(性卽理)의 논리로 변주되고 전개됩니다.
2600여 년 전, 석가모니는 무아(無我)를 주장하여 이단적 존재로 등장하고
자신의 논리를 설파하기 위해 인간을 이루는 오온(五蘊)과 12연기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사후 공불교와 유식불교, 선불교를 거치며 석가모니의 무아는 참나[眞我]로 변용됩니다.
'지금 이 자리[當下]'가 바로 '본래 <참나>가 실현되어 드러난 상태[本來現成]'이니
'자기가 현재 서 있는 자리를 살피는 것[照顧脚下]'이 곧 '참나'를 찾는 첩경이라는 것이 선불교 가르침의 요지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변용은 현대과학에 이르러 다시 자아와 자유의지의 부정으로 이어져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인류 역사 내내 진지하게 성찰했으나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문제,
'나'는 아무 데나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인류는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입장은 '나를 버리라'고 가르치고 어떤 입장은 '참나를 찾으라'고 가르치는 세상,
'나'의 정체를 모른 채 살아가는 수십억 '나들'의 세상,
문득 이런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헤이, 헤이, 헤이~굿바이!"
*
위에 올린 두 장의 사진은 동일한 사진의 변용입니다.
동일한 사진인데 하나는 '나'가 보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습니다.
배경이 흐려지면 나타나고 배경이 어두워지면 스러지는 저것,
인간에게서 생성되는 모든 문제가 바로 저 환영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어둠의 메시지 같습니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