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 일출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이십대 때 소주를 마시며 진하게 읽던 장영수의 '동해'와 '메이비'가 생각나는 여정이었습니다. 동해는 언제나 '동해'라는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동해의 죽음을, 아니 이미 주검이 된 기운을 내내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바다가 죽을 수 있을까? 이미 죽어서도 바다 시늉을 할 수 있을까? 눈이 많이 내리는 밤에 홀로 생각에 감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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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1
장영수
<겨울에, 내 사촌과 바닷가에서, 한 모래 위에서, 검은 바위들을 들이받는 물결 소리 속에서.>
벌겋게 소주에 취한 내 사촌은
졸업을 하고 공장을 차리겠다고
설쳤다. 가진 돈도 배경도
없으면서, 파도가 물거품 튀기면서.
우리의 차가운 옷섶이, 겨울 바다의
체온을 닮으면서, 우리가 겨울
동해 바다의 연변의 풍경의
한 조각이 되면서,
먼 해안의 부두에, 공장 굴뚝
연기가, 얼어 붙은 듯, 하늘로 뻗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 열차의 정적
소리가, 우리 등 뒤에서, 시뻘건 겨울
저녁놀에 꺼져 나가는 것을 들으면서.
우리는 돌아왔다. 컴컴한 어둠
속을 설치던 내 사촌은 군대에 가서
죽고, 나는 동해 바다의 끓어
오르던 물결 소리를 깊숙히 내
안으로 구겨 처박고 잠 재우고 있다.
잠들지 않는 젊은 우리들의 망상을
거칠도록 단호하게 빠져나오면서도
또 어느 거리 어느 길목에서 세상의
모든 담벼락에 검은 바위돌에 일일이
참혹하게 부딪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