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 있는 암자를 방문했습니다.
오래 전에 스님과 약속을 잡아놓고 겨울이 오는 길목을 돌아
느린 걸음으로 산으로 들어가 스님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젊고 유쾌한 학승으로 막힘이 없고 진솔해
예상 밖으로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석가모니의 초기 가르침으로부터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현대물리학의 기둥이 된 양자역학과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이르기까지
스님이 여러 번 물을 갈아 우려낸 차를 마시며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인식이 파동이 되고, 파동이 인식이 되는 시간,
스님의 말씀 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건 이런 것이었습니다.
"내가 대견스러운 건 스스로 부끄러워 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스님이 거처하는 방은 고시촌이나 대학가 자취방과 하등 다를 게 없었는데
벽에 부적처럼 붙어 있는 "덕분에"라는 말이 방의 공간을 무량하게 넓히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보고자 했던 스님의 공간이 애초부터 그런 쪽방이 아니라서 천만다행,
스님은 자신의 거처를 공간이라고 여기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여실히 깨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무한대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