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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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 리마스터링

레무리안2023-10-08

Galaxy Note9 일요일, 모처럼 영화 한 편 볼 생각으로 넷플리스에 접속, 한 시간 이상 볼 만한 영화를 찾다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 <화영연화>, <중경삼림>, <2046>이 리마스터링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본 영화들이라 스쳐가려 했는데, 흐릴 대로 흐린 가을날씨 탓인가 <2046>을 스치다가 배경음악인 시크릿 가든의 Adagio에 족쇄가 걸리고 말았습니다. 화면을 멈추고 유튜브로 음악을 들은 뒤 <2046>의 시공간으로 투신! 예전에 볼 때 지루하고 산만한 느낌을 주던 영화였는데 2046이라는 ...

천주호

레무리안2023-10-01

추석 연휴, 친족의 권유로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권역에 있는 포천 아트밸리로 가 천주호(天株湖)라는 호수를 보고 왔습니다. 비탈진 경사길을 걸어올라 만나게 되는 화강암 병풍절벽이 마주친 순간 중국 장가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1990년대까지 아무도 찾지 않는 폐채석장이었는데 샘물과 빗물이 흘러들어 오늘날의 풍광을 이루고 숱한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 풍덩, 뛰어들고픈 욕구를 느끼게 하는 호수, 폐기처분되었던 것의 놀라운...

폭포, 추락의 다층적 의미

레무리안2023-09-11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선정된 한탄강 라인에서 재인폭포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저는 그동안 그곳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재인폭포를 보러 가지 않고 다른 것을 보러 갔다가 운좋게 인근에 재인폭포가 있는 걸 알고 우정 차를 몰아 문제의 폭포를 보러 갔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폭포를 보았지만 재인폭포는 주변 산세와 기막히게 어우러져 이전에 본 적 없는 빼어난 경관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폭포가 만들어내는 과격한 추락과 급격한 낙차, 상위지점과 낙하지점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위상차 같은 것들이 어느날 갑자...

귀빠진 날, 고구려로 가다

레무리안2023-08-25

며칠 전, 생일 점심 무렵 교외로 나가 막국수를 먹기로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호로고루'라는 지명을 보게 됐습니다. 지명 자체가 특이해서 검색해보니 연천에 있는 고구려 성터, 집에서 차로 53분 거리라는 길찾기 정보가 떴습니다. 사는 곳으로부터 53분 거리에 고구려 성벽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가족과 함께 드라이브 겸 역사탐방을 하러 떠났습니다. 실제로 한 시간쯤 뒤에 당도한 호로고루 성벽은 고구려가 쌓은 것이지만 668년 멸망 이후 나당전쟁에서 승리한 신라가 성벽을 보수하여 사용하고 심지어 ...

7월과 8월의 새벽 풍경전

레무리안2023-08-07

Galaxy Note9 촬영 6월 말경 수술을 받고 한 달 정도 경과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새벽운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새벽 등산을 하던 예전과 달리 자연생태가 살아 있는 드넓은 공원과 산을 선택해 운동하다보니 한여름의 녹음방초와 버섯, 조류 등속까지 날마다 풍경이 달라져 운동보다 정신건강에 큰 위안이 되고 에너지가 되는 걸 느낍니다. 새벽운동이 끝난 뒤에도 하루를 조용하고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가을의 작업을 당기지 않고 8월을 비워두기로 했습니다. 명상, 운동, 힐링, 독서, 음악으로 시간을 보내노라면 머잖아 서늘한 가을...

무언의 메시지

레무리안2023-07-27

삼일 전 새벽, 호수공원에서 만난 왜가리입니다. 아직 공원으로 나온 사람들 별로 없을 때, 커브를 돌며 달리다가 딱, 저 왜가리와 마주쳤습니다. 내가 동작을 멈추고 녀석을 주시했지만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이삼 분 정도 주시하는 동안 녀석의 등뒤에서 아침햇살이 부시게 차올랐습니다. 내가 그곳을 떠날 때까지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아 그 정지자세 자체가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습니다. 녀석이 뭔가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게 해독되지 않아 마음이 개운치 않습니다. 타임슬립...

맨발의 천국

레무리안2023-07-22

수술을 받은 지 이제 3주가 지났습니다. 회복을 위한 느린 산책으로부터 빨리 걷기를 거쳐 매일 새벽 호수공원으로 나가 30분은 달리고 30분은 맨발 걷기,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스쿼트와 아령운동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황토 숲길을 30분 정도 맨발로 걷는 게 너무 좋아 저 혼자 그 숲의 이름을 '맨발의 천국'이라고 붙였습니다. 외부에 햇살이 아무리 쨍쨍해도 그 숲속으로는 햇살 한 점 밀려들지 않습니다. 컨디션이 완전 정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니 다음주부터는 심학산으로 가 새벽 맨발 등산을 시도할 계획입...

캠핑 양상의 제국화

레무리안2023-07-13

대학시절 등산과 캠핑에 빠져 있을 때 자취방에는 항상 배낭이 꾸려져 있었습니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건 준비물이 그만큼 단촐했기 때문입니다. 텐트, 버너, 코펠, 바람막이 정도. 세월이 흘러 이제는 캠핑카 시대가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캠핑 장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종다양하게 진화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제국을 이루고 있는 형상입니다. 아파트 후문 바로 앞에 <벨누이뜨Belle Nuit>라는 캠핑용품 편집매장이 생겨 산책할 때 몇 번 들렀는데 그 규모에 매번 고개를 갸웃거...

오래, 그리고 멀리 가는 항해의 시작

레무리안2023-07-10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 21세기 소설 라이브러리』를 시작하며 2022년 7월과 8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순수 정통문예지 『현대문학』은 한국과학소설가협회 회원 작가 20명의 소설을 두 달에 걸쳐 특집으로 게재했다. 1955년 창간하여 한국 순문학을 대변해 온 잡지로서 놀라운 파격을 보인 셈이다. 그 놀라운 파격이 나에게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걸 지켜보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개벽을 확실하게 알리는 신선한 퍼포먼스로 보인 것이다. 본질적으로 보자면 더 이상 순수문학, 본격문...

내 인생의 기념일

레무리안2023-07-04

2023년 6월 27일은 제 인생의 특별한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그날 새벽 1시경부터 담석 통증이 시작되어 고통 받다가 결국 새벽 5시경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16년 동안 그렇게 담석 통증으로 응급실로 실려간 게 여섯 번, 한번 입원하면 평균 일주일 정도 지나야 회복이 되곤 했습니다. 의사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담낭 절제 수술을 권했지만 이상하게 "꺾이지 않는 마음"이 있어 버텼는데 이번에는 기이한 흐름이 발생해 병원으로 실려간 바로 그날 드디어 담낭 절제 수술을 받는 대결단을 내렸습니...

가끔, 때때로, 어쩌다

레무리안2023-06-21

가끔, 때때로, 어쩌다 집에서 작업하다 좀 답답한 느낌이 들면 자연스럽게 차를 몰고 바람을 쐬러 가는데 대개 용유도, 임진각 평화누리, 파주 프로방스나 신세계 아울렛 등지로 가게 됩니다. 일산과 파주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규모가 큰 베이커리 카페가 많은데 얼마 전 우연히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엄청나게 큰 규모의 베이커리 카페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차를 몰고 갔는데 외부의 엄청 넓은 부지에 야외석과 연못이 있고 실내는 공연장을 겸비한 광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높은 천정을 전달하...

다차원 라이브러리

레무리안2023-06-04

보름달이 떠 서재에 불을 끄고 있다보니 베란다 통창에 다차원 풍경이 떴습니다. 장난삼아 휴대폰으로 찍어본 것이지만 저는 이런 접힘과 겹침에서 우주의 가상성을 연상하곤 합니다. 우리가 실재라고 믿는 것들의 홀로그램 내지 시뮬레이션 가능성, 실재이거나 말거나, 믿거나 말거나 그런 것들로부터 지금, 여기의 <나>는 다만 지켜보는 의식의 시선으로 고스란히 무화됩니다. 나의 인생을 구경하는 관객의 시선, 그것으로 또다른 차원의 세상이 펼쳐지고 지속됩니다.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은 상태, 이 모든 조화는 나에...

유월의 익선동

레무리안2023-06-04

토요일, 날씨가 모처럼 화창하고 쾌청했습니다. 전철역에서 내려 잠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성벽을 끼고 순라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화사한 꽃에 둘러싸인 카페 노천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맑게 증류되는 기분, 아름다운 유월의 풍경입니다.

민트와 나의 여름별장

레무리안2023-05-27

날이 더워지면서 앞뒤 베란다를 열어놓는 시간이 늘고 그러다보니 수목이 무성한 아파트 정원 쪽 베란다를 내다보며 민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작업이 아니고 책을 읽거나 휴식할 때 저곳에 앉아 있으면 이 세상 어느 곳보다 평화롭고 아늑합니다. 앉아 있노라면 조석으로 모이를 받아먹는 참새 떼까지 날아와 짹짹거리고 포롱거리는 게 조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에 동화되어 자신을 망각하는 시간, 세상에서 가장 멋진 민트와 나의 여름별장입니다.

골드스톤 상형문자

레무리안2023-05-23

새벽 등산을 하는 동안 자주 만나게 되는 장면입니다. 정상 바로 아래 거대한 둥근 바위가 있는데 그 위치에 어떻게 저렇게 둥근 바위가 자리잡을 수 있는지 볼 때마다 신기한 기분이 들어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위에 올린 사진은 바위의 하단 부분에 아침 햇살이 뒤덮인 장면이고 현재시각은 6시 50분이지만 아침 햇살이 뒤덮이는 시간은 계절마다 달라집니다. 잠시 하산을 멈추고 골드스톤 위에 그려진 상형문자를 보노라면 그것을 해독하기 위한 상상력이 제멋대로 부풀어올라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 제가 읽어낸 상형문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