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지음│노란잠수함 펴냄│2017. 05. 30.
131*214(신국판 변형)│1도│216쪽│13,000원│ISBN 978-89-5596-795-1 (04810)
소설 / 한국소설
◆책 소개
한국현대문학의 탈정치화, 개인화를 선언한 불세출의 명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이상문학상에 빛나는 「내 마음의 옥탑방」 등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새로운 감수성을 이끄는 작가 박상우가 스스로 뽑은 대표작들!
“앞으로 내 앞에서 정치의 ‘정’자도 꺼내지 마.
그런 얘기를 꺼내는 새끼는······ 그런 새끼는 그냥 두지 않겠어!”
90년대 이후 한국현대문학의 탈정치와와 개인화를 선언하며 뜨겁게 환영 받은 작품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여럿이 뿔뿔이 흩어져 가고 ‘연대’와 ‘정치’라는 과거에 엄습 당한 인물들은 ‘가슴속에 남겨진 건 극단적인 허무뿐이고 그 허무 속에서 끝끝내 되찾고 싶은 건 인간적인 낭만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80년대말 대중적 집단의식에서 개인주의로 넘어가던 시대상을 절묘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이번 책을 준비하며 작가는 단어와 문장을 다듬고 부호들을 손보면서 ‘2017년 6월 이후, 이 책에 수록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정본임을 밝’혔다.
1991년 첫 소설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90년대 작가의 선두주자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한국문학의 새로운 물결을 만든 소설가 박상우의 작품 4편을 모았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외에도 시지프 신화를 골조로 가난과 욕망, 저항과 타성을 그린 「내 마음의 옥탑방」, 현실에 숨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는 「사랑보다 낯선」, 생(生)의 의미를 자연의 이미지와 연관시킨 존재론적 작품인 「매미는 이제 이곳에 살지 않는다」를, 책 마지막에는 작가 스스로가 새롭게 쓴 「나의 문학적 연대기―Across the Universe」를 수록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에 대하여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 새로운 연대의 벽두에 주먹만 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런 날 페기 리의 노래를 들으면 좋을 텐데……’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실상 이는 실제 박상우의 모습이라고 보아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 말한 바, ‘이제 내 가슴에 남겨진 건 극단적인 허무뿐이고 그 허무 속에서 끝끝내 되찾고 싶은 건 인간적인 낭만뿐이야’라는 말에는 박상우 자신의 세계 인식이 짙게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권성우(문학평론가)
박상우는 이미지라는 알을 품고 있다가 소설이라는 새를 낳는 작가다. 「내 마음의 옥탑방」 또한 옥상방(屋上房)이 아니라 옥탑방(屋塔房)으로 불려질 때의 이미지가 글을 쓰게 한 소설이다. 옥상방은 옥상에 위치한 방이라는 물질적 공간에 머물지만, 옥탑방은 위압감·이방감·폐쇄감·유배감의 느낌을 통해 심리적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이것은 김윤식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상(李箱)이 “조감도(鳥瞰圖)를 오감도(烏瞰圖)로, 동해(童孩)를 동해(童骸)”로 바꿔 놓은 것만큼의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김미현(문학평론가)
작가 박상우는 천상을 향해 수직으로 세워진 꿈의 매혹을 통해 현실의 빈곤을 되비추기도 하고, 지상으로 끝없이 펼쳐진 수평적 삶의 환멸을 극단의 방식으로 해부하는 데 몰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낯익은 현실에서 은은한 감동을 주는 끌림을 본다.
이 ‘사랑보다 낯선’ 끌림을 찾아 그는 ‘사람의 마을’에 당도한 것이다. 「사랑보다 낯선」에는 삶의 풍경을 천천히, 그러나 깊이 응시하는 만보와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공명이 깃들어 있다. -김민수(문학평론가)
「매미는 이제 이곳에 살지 않는다」에는 수직 지향적 현실 공간에 거주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인물들이 가득하다. 삶의 방향성을 상실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로서 ‘나’는 “지상에 없는 무엇, 인간이 만든 지도로는 갈 수 없는 곳”, “서북쪽 어디, 지상의 지도에는 표기되지 않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꿈꾸는데, 그것은 작품 안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형의 애인으로 생각하는 ‘마린’에 대한 일종의 근친상간적 사랑의 감정이며, 다른 하나는 짐바브웨로 사라져버린 형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매미는 이제 이곳에 살지 않는다」에서는 이처럼 가혹한 수직적 현실에 머물지 않고 미지의 길을 찾아 나서는 ‘나’의 수평적 보행에서 어떤 희망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김성수(문학평론가)
※노란잠수함 클래식 우리 소설은 현 단계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골라,
우리 시대 최고의 화가들의 그림을 표지로 꾸며 ‘이것이 한국문학이다’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본문 속으로
어제 말하던 것을 오늘 말하지 않는다는 게 깨달음의 결과라면 오늘 말하지 않은 것을 어제 말했다는 건 고스란히 무지망작의 소산인가? 우리는 어제를 기억하려 하지 않았고 오늘을 통해 내일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겨진 게 있다면 그저 어제의 열정을 수치스러워 하는 우리,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감을 부질없어 하는 우리가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공감대이기도 했다. 그러면 이제 더이상 우리가 만나 무슨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가? 그날 술자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우리 중 하나가 아주 우울한 표정으로 이런 발언을 했다. 이제 내 가슴에 남겨진 건 극단적인 허무뿐이고 그 허무 속에서 끝끝내 되찾고 싶은 건 인간적인 낭만뿐이야. 나머진 아무것도 없어······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올라가고자 하는 나의 꿈과 내려오고자 하는 그녀의 꿈, 그것이 지극히 대조적인 아이러니라는 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운명을 멸시하고 그것에 저항하고 싶은 격렬한 용기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갔을 뿐이었다. 행복했던 시월 한 달, 나는 그녀에게 무엇이었던가.
―내 마음의 옥탑방
하지만 그녀가 치마를 걷고 내 위에 곧게 앉았을 때, 나는 그녀가 말한 극에 달한 긴장의 실체를 감지할 수 있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 가로놓인 견딜 수 없는 긴장, 그것이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생명력이란 걸 비로소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래, 그것이 없으면 삶도 이미 죽음과 다를 바 없으리라.
―사랑보다 낯선
밤마다 한기가 느껴졌다. 아직 무더위가 완전히 꺾이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그런 밤마다 나는 몸을 한껏 웅크리고 소파에 누워 내 주변에서 사라져버린 존재들에 관해 생각했다. 울지 못하는 존재들, 울 수 없는 존재들, 그리고 사라져버린 존재들······ 그들이 모두 말라죽은 매미의 망령이 되어 내 주변을 떠도는 것 같았다.
―매미는 이제 이곳에 살지 않는다
청춘은 열정으로 문학을 하고, 장년은 지혜로 문학을 하는 것이니 양자는 상호보완의 관계이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상호보완성이 작가의 한 몸에서 구현되고 또한 체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서두르지 말고 죽는 날까지 작가는 우주적인 탐사를 계속해야 한다. 나로부터 다른 나에게로 가는 길, 문학은 인생과 인생을 이어주는 가교이니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우주의 다리인 것이다. 그렇게 하나 됨을 위하여, 하나 됨을 향하여, 나는 죽는 날까지 쉬지 않고 우주를 가로질러 갈 것이다.
―나의 문학적 연대기 Across the Universe
◆저자에 대하여
지은이 박상우
198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비밀문장』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작가』 등이 있다.
◆차례
작가의 말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내 마음의 옥탑방
사랑보다 낯선
매미는 이제 이곳에 살지 않는다
나의 문학적 연대기—ACROSS THE UNIVE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