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월드 개편으로 오랫동안 많은 삶의 기록을 저장해 온 블로그를 버리고 새로운 홈피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것들이 변하는 시절입니다. 새로운 홈피의 컵셉은 '극도의 단순성'. 홈피 대문 사진을 고르다가 언뜻 2009년 1월 10일 천수만 간월도에서 찍은 철새들이 눈에 잡혔습니다. 전생에 찍은 사진을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아득합니다. 철새 사진을 고르고나자 언젠가 내가 쓴 철새에 관한 글이 기억났습니다. 결국 2003년 10월 20일에 출간된 책을 찾아내고 기억을 자극한 글이 수록된 페이지를 찾아냈습니다. 아마도 그것을 새로운 홈피의 첫 글로 올리라는 뜻으로 이 아침에 기이한 우연이 필연처럼 작동한 모양입니다. 2003-2009-2016의 인연 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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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북섬, 오클랜드 군도에는 여섯 개의 크고 작은 화산섬이 있다고 한다. 그곳의 해안을 따라 마지막 섬까지 가면, 섬 한가운데에 몇 억만년 전부터 보존된 원시의 늪지대가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섬 한가운데 늪지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한다. 사방이 온통 초록의 식물로 뒤덮인 생명의 보고(寶庫). 그곳으로 세계 도처에서 새들이 날아와 눈을 뜨고 죽는다고 한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몇 만리 창공을 날아와 죽는 새들.
생명체의 본능 속에 아로새겨진 숙명의 회로를 생각한다. 기는 짐승은 죽을 때까지 기다가 죽고, 걷는 짐승은 죽을 때까지 걷다가 죽고, 나는 짐승은 죽을 때까지 날다가 죽어야 하는 숙명의 회로.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숙명에 부응하는 생명체의 몸짓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장렬하다.
지금, 우리는 모두 어디로인가 가고 있다. 본능 속에 아로새겨진 숙명의 회로를 따라,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의 극점을 향하여 쉬지 않고 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에 등 돌리지 않고, 고통을 기피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력을 바닥까지 퍼올리는 생명체는 언젠가 운명의 극점에 당도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곳에서 살 한 점, 눈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비로소 눈을 뜨고 죽을 수 있으리라.
인생, 생명이 잠들어 생명이 잉태되는 늪.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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