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는 과정을 거치며
근 열흘 넘게 운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운동을 시작할 요량으로
오늘은 새벽 일찍 파주 심학산으로 갔습니다.
지난 비로 등산로가 많이 패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도토리들이 익은 것, 안 익은 것 뒤섞인 채 도처에 떨어져
가을이 온 듯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듯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주워 사진을 한 방 찍어주고
다시 정상으로 오르는 동안 문득 잊고 있던 옥잠화가 생각났습니다.
정상 부근에 심어진 옥잠화 군락지는 한여름에 흰 꽃을 피우는데
그 자태와 향기가 너무 좋아서 저는 여름마다 '향기도둑'이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팔월 중순경이면 이미 꽃들이 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걱정스러웠는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딱 한 줄기에만 꽃이 남아 있었습니다.
많은 꽃들의 향기가 개성적이지만 저는 일생을 통해 인연으로 만나게 된 향기 중
옥잠화와 치자꽃 향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렇게 정상에 올라보니 한강 건너편 봉성산과 동성산에 운무까지 곁들여져
아침햇살에 가을의 기운이 완연해지고 있었습니다.
한여름의 햇볕과 가을볕은 그 농도와 밀도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데
이른 아침의 가을볕은 붉은 황금빛으로 사물을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게 채색합니다.
그렇게 저는 심학산에서 가을을 줍고 돌아와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기운들이 한군데로 모이는 걸 느끼고
정기가 내밀하게 속으로 영글어가는 걸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 가을, 모두 넉넉한 결실의 계절 맞이하시길!